순서라는 이름의 착시
인간은 본능적으로 ‘순서’에 민감합니다. 선착순으로 마감되는 맛집 줄서기부터 대학 입시의 예비 번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많은 기회는 앞선 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의 직관을 지배하여, 무작위의 영역인 확률 게임에서조차 “먼저 하는 것이 유리하다”거나 혹은 “남이 실패한 뒤에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식의 막연한 믿음을 갖게 만듭니다. 시간의 흐름이 인과를 지배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지요.
하지만 수학으로 들여다본 세상은 우리의 직관과는 사뭇 다릅니다. 순서가 정해진 비복원 추출상황에서, 과연 시간의 순서가 확률적 유불리를 결정할까요? ‘제비뽑기’를 통해 이 역설적인 진실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제비뽑기의 역설
여기, 개의 제비 중 단 개만이 ‘당첨’인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가 먼저 제비를 뽑고, 그 뒤에 가 남은 제비 중 하나를 뽑습니다. 와 , 과연 누가 더 유리할까요?
“앞사람 가 당첨 제비를 가져가 버리면 에게는 기회조차 없는 것 아닐까?”라는 불안감과, “오히려 가 꽝을 뽑아 확률을 높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충돌합니다. 특히 제비뽑기는 뽑은 것을 다시 넣지 않는 비복원 추출 방식이기에, 의 행위가 물리적으로 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확률(Probability)‘의 정의를 다시금 상기해야 합니다. 확률이란 결과가 드러난 뒤의 확정이 아니라, 우리가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갖는 ‘논리적 기대치’입니다. 가 제비를 확인하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탄식하기 이전의 시점에서, 가 당첨될 가능성을 엄밀하게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우선 의 상황은 단순합니다. 아무런 선행 사건이 없으므로, 개의 제비 중 개의 당첨 제비를 뽑을 확률 는 직관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입니다. 의 당첨 확률 는 의 결과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를 종합해야 합니다. 즉, 가 당첨된 경우와 가 당첨되지 않은 경우를 나누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 제비를 뽑는 시점은 의 결과가 이미 결정된 후이므로, 의 운명은 가 어떤 제비를 가져갔느냐에 따라 갈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Case)를 빠짐없이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경우는 딱 두 가지입니다. 가 당첨 제비를 뽑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이지요.
Case
- : 가 당첨 제비를 뽑음
- : 가 낙첨 제비를 뽑음
먼저, 가 당첨 제비를 뽑는 상황을 보겠습니다. 가 당첨 제비 하나를 가져갔으므로, 남은 제비는 개이며 그 중 당첨 제비는 개뿐입니다. 그러므로 가 당첨될 확률은 가 됩니다.
가 당첨되고, 연이어 도 당첨되는 확률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으로 가 꽝(낙첨) 제비를 뽑는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가 당첨을 뽑지 못했으니 남은 제비 개 속에는 당첨 제비 개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때 가 당첨될 확률은 으로 높아집니다.
가 낙첨되고, 그 덕분에 가 당첨되는 확률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당첨되는 경우는 앞서 본 두 가지 경우뿐이며, 이 두 경우는 동시에 일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두 확률을 더하면 의 전체 당첨 확률이 완성됩니다.
이 분수를 약분하면, 가 먼저 뽑으나 가 나중에 뽑으나, 당첨 확률은 으로 완벽하게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관점의 전환
우리가 제비뽑기에서 “먼저 뽑는 게 유리할까?”라며 고민하는 이유는, 그 행위를 ‘내가 직접 운명을 선택하는 과정’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손을 넣어 휘젓는 그 순간에, 나의 당락이 결정된다고 믿는 것이지요. 그래서 앞사람이 휘젓고 간 뒤에 내가 손을 넣는 것이 왠지 불리해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나눠주기(Distribution)’ 의 관점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상황은 단순합니다. 책상 위에 개의 제비가 있습니다. 단 개만이 ‘당첨’이라고 적혀 있고, 나머지 개는 ‘꽝’입니다. 우리는 이 제비들을 보이지 않게 뒤집어 섞습니다. 그리고 섞인 제비들을 한 줄로 가지런히 쌓아둡니다.
어떤 제비가 당첨인지는 모르지만, 그 배치는 번부터 번까지 고정되어 있습니다. 진행자는 맨 위에 있는 첫 번째 제비를 집어 에게 건네줍니다. 그리고 바로 그 밑에 있는 두 번째 제비를 집어 에게 건네줍니다.
이 장면을 정지 화면으로 바라보겠습니다. 가 제비를 받는 순간과 가 제비를 받는 순간 사이에 시간 차이가 존재한다고 해서, 두 번째 제비에 적힌 글씨가 저절로 바뀔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제비의 내용은 진행자가 나눠주는 순간이 아니라, 섞고 쌓아두는 순간에 이미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나눠주는 행위는 단지 결정된 운명을 배달하는 절차에 불과합니다.
이제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제비 더미를 다시 상상해 보겠습니다. 뒤집힌 채 쌓여 있는 제비들 중, 맨 위의 제비와 두 번째 제비를 구별할 수 있는 단서가 있나요? 없습니다.
우리가 제비를 섞을 때 특정 위치에 당첨 제비를 몰아넣지 않았다면, 당첨 제비는 첫 번째 위치에도, 두 번째 위치에도, 심지어 마지막 열 번째 위치에도 동등한 자격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칭성(Symmetry)‘입니다. 대칭성은 사물의 물리적 속성이 아니라, 관찰자인 우리의 ‘구별 불가능성(Indistinguishability)‘에서 기인합니다.
구겨짐도, 얼룩도 없는 똑같은 모양의 뒷면들은 우리에게 그 어떤 차별적 정보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첫 번째 제비와 두 번째 제비를 겉모습으로 구분할 수 없다면, 수학적으로도 두 제비의 당첨 확률을 다르게 책정할 그 어떤 논리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이프니츠가 말한 ‘충분 이유율’에 따라, 차별할 이유가 없는 대상은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하며, 이것이 확률론이 지키는 가장 엄격한 윤리이자 논리입니다. 따라서 확률의 대칭성은 “정보가 없다면 평등하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신의 시선에서는 이미 당첨 제비의 위치가 정해져 있겠지만, 그 결과를 모르는 인간의 시선에서 당첨 제비는 모든 위치에 균일하게 퍼져 존재합니다. 우리가 제비를 뒤집어 확인하기 전까지, 이 ‘가능성의 안개’는 어느 한 곳에 뭉치지 않고 모든 자리를 공평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깨진 대칭과 붕괴하는 확률
앞서 우리는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확률의 대칭성이 어떻게 와 를 평등하게 만드는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제비를 확인하여 그 결과를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가 자신의 제비를 확인한 뒤,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당첨이다!”라고 외쳤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 순간, 세계는 돌변합니다. 가 손에 쥐고 있던 제비의 물리적 상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이라는 기대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납니다. 가 “당첨”이라고 선언하는 순간, 가 꽝을 뽑았을 가능성이 있는 평행 우주들은 모조리 소멸합니다.
따라서 표본공간이 축소되며 의 승리 확률 은 다음과 같이 수정됩니다.
그렇다면 상황을 조금 더 묘하게 비틀어 보겠습니다. 가 제비를 뽑아 몰래 혼자만 확인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의 확률은 어떻게 될까요?
먼저 정보를 독점한 의 시선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에게 더 이상 ‘불확실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는 자신의 손에 들린 제비가 당첨인지 꽝인지를 눈으로 확인했으므로, 가 처한 상황을 조건부 확률이 아닌 확정된 현실로 바라봅니다. 만약 가 당첨 제비를 쥐고 있다면 그는 의 당첨 확률이 로 줄어들었음을 확신할 것이고, 반대로 자신이 꽝을 뽑았다면 에게 이라는 더 높은 기회가 주어졌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는 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정보가 차단된 에게 있어, 가 당첨된 세계와 가 실패한 세계는 아직 중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입장에서 의 확률은 정보가 없던 초기 상태인 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상하신가요? 물리적 실체는 하나인데 어떻게 해석에 따라 확률이 두 개가 될 수 있냐고 반문하고 싶으실 겁니다. 사실 확률은 제비라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인식에 깃들어 있습니다. 수학으로는 설득되지 않는 직관을 위해, 사고 실험을 하나 더 준비했습니다.
사고 실험: 빛의 속도와 정보의 한계
우주 공간으로 시야를 넓혀 보겠습니다. 지구에서 철저하게 섞인 개의 제비 중 하나는 가, 하나는 가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제 는 지구에서 약 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로 떠납니다. 는 지구에 남아 자신의 제비를 지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전에 약속한 우주 표준시를 기준으로 는 시 정각에 제비를 열고, 는 시 분에 제비를 연다고 해보겠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주 전체에 통용되는 절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성(Simultaneity)‘은 두 관찰자가 동일한 관성계(Inertial Frame)를 공유한다면 명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물리적 개념이다.
마치 거대한 기차의 앞 칸과 뒷 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일 때 그 내부의 시계들이 동기화될 수 있는 것처럼, 지구와 안드로메다가 서로에 대해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빛 신호를 이용한 ‘아인슈타인 동기화(Einstein Synchronization)’ 절차를 통해 만 광년의 거리를 잇는 단일한 시간축을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실험에서 ‘동시’란 절대 시간이 아니라, 두 관찰자 사이에 사전에 정밀하게 약속된 ‘좌표 시간(Coordinate Time)‘을 의미하며, 이 약속된 체계 안에서 실험은 논리적으로 성립한다.”
시 정각, 안드로메다에 있는 는 제비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그 순간, 제비의 상태는 ‘당첨’ 혹은 ‘꽝’이라는 확정된 현실로 붕괴했습니다. 반대로 아직 제비를 열지 않은 지구의 를 보겠습니다. 시계바늘은 시 분 초를 지나고 있고, 가 제비를 열기로 약속한 시 분까지는 채 분이 남지 않았습니다.
지구에 있는 의 당첨 확률은 물리학적으로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요? 가 이미 결과를 보았으니, 의 확률도 즉시 수정되어야 할까요? 안드로메다에서 가 확인한 정보가 지구에 도달하려면, 빛의 속도로 달려도 250만 년이 걸립니다. 즉, 가 제비를 연 직후의 분이라는 시간은, 빛조차 건널 수 없는 거대한 시공간의 벽에 의해 와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분 사이에 의 당첨 확률이 바뀐다면, 이는 빛의 속도()를 초월하는 정보 전달을 의미하며,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통해 금지한 ‘인과율(Causality)‘의 성역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물리학에서 인과율(Causality)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제1원칙이다. 모든 관성계에서 원인은 반드시 결과보다 시간적으로 선행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대성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말아야 할 최후의 보루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빛의 속도()’ 다.
만약 정보가 빛보다 빠르게 전달된다면(), 로렌츠 변환 수식에 의해 ‘시간 간격이 음수()가 되는 좌표계’가 수학적 필연으로 발생한다. 이는 특정 관찰자에게는 ‘유리창이 먼저 깨지고 나서 총알이 발사되는’ 기현상이 목격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빛의 속도는 단순한 빠르기의 기록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순서가 뒤집히는 논리적 모순을 막기 위해 우주가 설정해 둔, 정보 전달의 절대적 제한 속도이다.”
이 사고 실험이 도달한 결론은 명확합니다. 결국 확률은 대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지식 상태에 따라 정의되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사실 확률은 ‘미래의 가능성’이라기보다 현재 내가 가진 ‘무지(Ignorance)의 그림자’ 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정보는 정답에 더 가까워지는 길일까요? 누군가 친절하게 닫힌 문 하나를 열어 그림자의 일부를 걷어내 준다면, 우리는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걸까요? 다음 영상에서는 몬티홀 문제를 통해 이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